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자유가 우리 존재의 본질!”
주체적인 내가 되기 위해 자유로 나아갔던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온 편지들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으로 오늘날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사회적 억압에 도전하며 ‘자유’의 삶을 살아낸 그녀는 ‘편지가 없다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을 만큼 편지 쓰는 걸 좋아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 문학을 연구하는 박신현 문학평론가가 울프가 남긴 4,000여 통의 편지 가운데 ‘자유가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96통의 편지를 직접 발췌해 엮고 번역한 것이다.
울프가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와 주고받은 서신 일부는 국내에 이미 알려진 바 있지만 그 외의 언니 바네사 벨, 남편 레너드 울프, 애정했던 에델 스미스,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와 같은 주변 예술가들, 독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각 편지는 작가가 되기 전인 1882년부터 1941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서까지 연대순으로 담았으며, 1부 자유(1882~1922년), 2부 상상력(1923~1931년), 3부 평화(1932~1941년) 등 시기에 따라 버지니아 울프가 갈망했던 키워드를 잡아 3부로 구성했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각 부가 시작될 때마다 해당 시기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결혼하기 전 결혼에 관해 고민하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자유로운 성 정체성을 고백하며, 소설에 대한 평가에 반응하고, 여성의 지위를 위해 투쟁하고, 런던의 평화를 소망하는 등 자신을 찾고, 자신에 대해 말하며,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인간 버지니아 울프가 편지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편지글인 만큼 수신인과 당시 상황에 관해 필요한 정보는 각주로 섬세하게 실었고, 자유, 상상력, 평화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를 부록으로 담아 읽을거리를 더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유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었다.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상상력이 필요했고,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평화가 간절했다. 울프의 편지를 통해 독자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면에 간직한 진실을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희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울프의 말처럼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나로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길 기대한다.
저자 : 버지니아 울프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문필가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독서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화가인 언니 바네사와 함께 젊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만나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했고, 거기서 만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했다. 1915년 출간한 소설 《출항》을 시작으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등 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들을 남겼고, 여성의 글쓰기와 지위에 관한 산문 《자기만의 방》, 《3기니》 등도 발표했다. 또한 남편 레너드와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발견된 편지만 4,000통에 달할 정도로 편지 쓰기를 즐겼던 그녀에게 편지란 우정과 사랑, 아이디어, 새로운 소식의 통로였다.
번역 : 박신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 학위와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이자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연구한 논문 〈여성과 비인간의 미적 주체성과 정치적 행위성〉, 〈회절과 얽힘의 텔레커뮤니케이션〉, 〈버지니아 울프 소설에 구현된 기술미학과 환경미학〉 등을 발표해 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캐런 바라드》, 《공유: 관계적 존재의 사랑 방식》, 《신유물론 x페미니즘》(공저), 《신유물론: 몸과 물질의 행위성》(공저), 《생태, 몸, 예술》(공저)이 있고, 《강철혁명》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1부 자유(1882~1922년)
나는 결혼하지 않는 공동체를 설립할 거야
언젠가 정말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보낸 글들은 단지 실험일 뿐이었어요
살림과 글쓰기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살아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흔들림을 끌어내고 싶어요
스물아홉인데 결혼도 안 했고, 아직 작가도 아니지
나를 열정적으로 만들어 줄 누군가와 결혼할 거야
결혼을 직업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야
그는 내 글쓰기가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기를 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한 명 갖고 싶어요
제럴드가 내 책 《출항》을 받아 줬어요
삶의 광대한 격동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인쇄에 비하면 쓰는 건 아무것도 아냐
서평이 미국인들을 끌어당긴 것 같아요
가능한 한 교정하고 싶어요
남성과의 비교는 나를 전혀 자살로 이끌지 않아요
여성들은 향상돼 왔고 여전히 향상될 수 있습니다
어째서 내가 글을 쓰는 법을 아는 유일한 여성이 될 수 없는 거야
프루스트는 표현에 대한 나의 욕망을 너무 자극해요
《제이콥의 방》 표지 디자인 수정해 줄 수 있어?
글쓰기의 기술에 관해 당신과 토론하고 싶어요
사실주의 없이 인물을 어디까지 전달할 수 있을까요
나를 격려해 주는 당신의 편지를 간직할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완전히 틀렸어요
이 책은 업적이라기보다는 실험입니다
나는 소설 쓰기를 지금도 앞으로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2부 상상력(1923~1931년)
믿을 수 없이 소중한 런던의 모든 영광을 바라봅니다
사랑은 질병이자 일시적 착란이에요
두 책을 모두 봄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순결하고 야만적이며 귀족적이에요
같은 성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정심의 결여에 관해서는 당신이 옳을 거예요
지금은 다양한 의견들이 쌓이도록 놔두고 있어요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느끼는 즐거움만이 유일한 길잡이예요
형식은 무엇일까? 소설은 무엇일까?
글을 빠르게 순식간에 쓰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친절한 것 같아요
사물이 스스로 보이게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험을 감수하는 게 옳았을 거예요
로마가 내가 죽으러 올 도시라고 확신해
언니는 내 안의 문학적 감각을 자극하는 것 같아
저녁 식사 장면은 지금까지 내가 쓴 것 중에 최고예요
그들 정신의 완전한 오만함과 비현실성이 좋아
어떤 게 무엇을 의미한다는 말을 직접 들으면 나는 몹시 싫어져요
이걸 쓰자마자 내 몸은 황홀함으로 넘쳐흘렀죠
사진 몇 장을 고르려면 당신을 만나야 해요
내가 당신을 만들어 냈나요?
언어로는 건널 수 없는 만의 머나먼 저편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책을 쓸 거야
표지를 위해 신선한 디자인을 만들어야만 해
이건 단지 젊은 여성들에게 했던 강연이에요
말해질 수도 있는 것, 말해지지 않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젊은 여성들을 위해 읽기 쉽게 쓰고 온건하게 절제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그 안에서 진실한 무언가를 발견했다니 기쁩니다
우리는 1만에서 1만 1,000부 정도 판매됐어요
사람들은 내가 글을 아름답게 쓴다고 말하죠
우리 출판사 판매량이 꾸준히 줄었어요
젊은이들이 두뇌를 작동시키길 원했어요
나는 정말 다양하다니까요
오직 여성들만 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요
내 어려움은 플롯이 아니라 리듬에 따라 글을 쓴다는 점이에요
당신의 방을 독서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기뻐요
레너드가 《파도》를 마음에 들어 해요
캐릭터들이 여러 명이면서 오직 한 명이어야만 해요
나 자신을 모아 한 명의 버지니아로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요
우리 이걸 토론해야겠어요
그래서 나는 내 다음번 낙타의 등에 오릅니다
3부 평화(1932~1941년)
그때 문득 이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정말 속물이야!
심하게 질투가 나요
정치가 여전히 빠르고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있어
사회 전체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성별의 차이가 다른 견해를 만드는 것 같아요
멍청한 분노와 절망 외에 느낄 수 있는 게 없어요
이 책을 혐오하며 각 페이지에서 깊은 상처를 보게 돼요
그 아웃사이더 아이디어로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평화주의가 커지고 있는 걸 목격해요
아마 그건 단지 단어들의 모닥불이 되진 않을 거예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됩니다
아웃사이더가 우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내 피가 끓어서 평소와 같은 잉크 방울들이 되게 만들었어요
모두 전쟁이 확실하다고 말했고, 또한 전쟁은 없을 거라고도 말했대
다소 냉소적이 됐고 불명예스러운 평화를 확신했어
나는 그 간소함을, 불순물이 없는 발가벗음을 숭배해
내 작가적 허영심이 으쓱해졌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전투기들이 머리 위로 찾아왔어
내 인생의 열정인 도시 런던이 완전히 파괴된 걸 보았어요
비가 오고 또 오고, 나는 걷고 또 걸었어요
왜 그때 내가 수치심을 느껴야 했을까요?
당신이 결정권을 행사해 주길 바라요
다시 돌아오기엔 내가 너무 멀리 가 버렸다고 느껴
너무 어리석고 하찮아서요
내가 당신의 삶을 낭비하고 있죠
부록: 에세이
몽테뉴: 영혼의 자유
여성의 직업
평화에 관한 생각들
옮긴이의 말 - 자유, 우리 존재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