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
“낮에는 나 말고도 도와줄 사람 많잖아!”
당신의 지친 하루에 여유를 처방해 주는 약국.
연중무휴, 일몰부터 일출까지 영업합니다.
가로등이 적어 어두컴컴한 빌라촌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 H동의 밤을 밝히는 ‘야간약국’에서 흘러나오는 빛이다. 12년 전 문을 연 이후, 365일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가 지는 밤부터 다시 해가 뜨는 아침까지 손님을 맞이하는 야간약국. 혹시 모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시작한 야간 영업이지만, 약국은 어느새 H동의 상징으로 자리해 주민들의 아픈 곳은 물론이고 지친 마음까지 치유해 주고 있다. 특히, 한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다디단 휴식을 선물한다.
‘연중무휴, 일몰부터 일출까지 영업’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표정한 얼굴의 약사가 손님을 맞이한다. 야간약국의 약사 ‘보호’는 손님이 오면 얼핏 귀찮다는 듯 몸을 일으키지만, 누구보다 꼼꼼히 증상을 파악해 적확한 약을 처방해 준다. 친절하지도, 말이 많지도 않지만 보호의 무심함과 담담함은 조급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여유를 준다. 무심한 얼굴로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손님이 없을 때에도 약국 통유리창 너머를 빤히 지켜보는 보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롭던 야간약국이 H동에서 벌어지는 마약 사건에 말려든다. 범죄 조직에서 마약 유통에 이용하던 가출 청소년이 약국에서 쓰러진 뒤, 잠복 중이던 신입 형사 ‘환경’이 사무원으로 위장 취직하게 된 것. 점차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의 그물망이 좁혀지고, 경찰도 그 정체에 가까워지면서 보호가 밤을 밝히려 하는 이유도 서서히 드러난다.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캐릭터와 위로를 건네는 힐링 스토리, 그리고 미스터리한 과거로 긴장감을 더한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은 출간 전 시놉시스만으로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ACFM에서 열 곳이 넘는 제작사로부터 영상화 문의가 쇄도해, 독자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누군가는 잠 깨는 약을 찾고,
누군가는 잠들 수 있는 약을 찾는 밤.
야간약국의 영업은 바로 그때 시작된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서울의 밤을 밝히는 심야 약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고혜원 작가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 “낮에는 나 말고도 도와줄 사람 많잖아.”였다며 작가의 말을 전한다. 작품을 쓰는 내내,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운 밤을 살아내는 이들을 위해 환하게 불을 켜고 마냥 기다려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잠복할 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눈가에 물파스를 오용하는 환경.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 24시간 긴장한 채 사느라 수면장애가 생긴 배우 희영. 연극 배우라는 꿈을 위해 배달, 막노동 등 몸을 사리지 않아 상처가 끊이지 않는 지환. 유흥업소에서 일하느라 늘 술에 취해 있는 란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남과 다른 일상에 괜스레 조급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몸에 탈이 난 채로 야간약국을 찾는다.
약한 감기 증상이라면 새콤한 귤로 비타민을 먹고 푹 쉴 것, 물파스 대신 10분이라도 진짜 잠을 잘 것, 내성이 생긴 수면유도제 대신 몸에 긴장을 풀 것, ‘아무거나 잘 듣는 약’ 대신 각자 통증과 상황에 잘 맞는 약. “가장 센 약으로 주세요.” 하는 요구에는 “무턱대고 센 약보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잘 맞는 걸 알지.”, “지난주에 산 약 또 주셔도 돼요.” 하는 말에 “그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서 또 온 거잖아요.”, “팔기 싫으면 마세요.” 하는 손님에게 “그럼 가세요.”라고 당당히 대꾸하는 것, 이것이 약사 ‘보호’만의 처방법이다.
“계속 쉬지 않았잖아. 너한테 필요한 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해.” -책 속에서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주변 동네보다 낙후된 탓에 비싼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모이는 H동이지만, 누군가는 이곳이 자신의 ‘리틀 포레스트’라고 말한다. 감독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늘 조급함에 종종거리며 발로 뛰어야 하는 조연출 민경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리틀 포레스트란 “어쩌면 그건 정해진 장소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하고 말한다.
보호의 특별한 처방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너무 애쓰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야간약국의 손님들처럼 지금보다 나은 미래, 여기보다 더 좋은 저곳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이들에게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은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처방이자 여러분의 ‘리틀 포레스트’가 되어줄 것이다.
벚꽃이 만발한 봄에 태어났다. 서로의 온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2019년 〈경희〉가 한경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서 당선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래빗》, 《연화의 묘 : 대국을 만나다》, 《경희 : 모던걸 런-웨이》,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을 썼다. 《래빗》은 부산국제영화제 ACFM에 선정되며 영상화가 확정되었다. 앞으로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
프롤로그. 한밤의 약국
1. 눈에 닿지 않도록 주의할 것
2. 정량 이상 복용하지 말 것
3. 복용 전 약사와 상의할 것
4. 개봉 이후, 장기간 사용하지 말 것
5.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할 것
6. 증상 개선이 없으면, 전문가와 상의할 것
7. 해당 약물은 취급하지 않음
에필로그. 한낮의 약국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