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단 한 번도 떠날 때와 똑같지 않았다 - 페넬로페에서 스타이넘까지 젠더의 프리즘으로 본 여행 이야기
자유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문밖으로 나온
여성들의 걸음으로 다시 그리는 세계 지도
“여성에게 여행은 모든 금지와 명령에 불을 지르는 일이다.“
『르 몽드』, 『마담 피가로』, 『마리끌레르』 추천!
여행문학의 역사를 비평적으로 탐구한 획기적 인문 에세이
오래전부터 여행과 발견, 정복은 남성의 몫이었다. 『오디세이아』로 대표되는 고전 여행문학에는 두 가지 형태의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를 양육하며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와 길 위에서 남성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키르케가 그 예다. 남성의 글에서 여성은 절조를 지키는 어머니이거나 에로틱한 창녀였다. 언론인이자 여행자인 뤼시 아제마는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남성중심적 고전에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10년 넘게 도착하고 떠났던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젠더의 프리즘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문학)에 접근한다.
저자는 남성 작가들의 글에 담긴 여성혐오와 권력, 부풀린 거짓말을 낱낱이 폭로한다. 소설에서 여성들을 이름 대신 동물적 별명이나 외모 묘사로만 칭한 잭 케루악, 시선으로 그가 도시에 갖는 지배력을 표현한 헤밍웨이,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녀들과 성관계를 맺으며 타히티섬에 매독을 퍼뜨린 고갱 외에도 많은 남성 여행자들이 영웅적인 이야기를 꾸며내고 진실을 왜곡하고 경험을 과장했다. 그렇게 구축된 남성들의 허구적 모험담을 비판하며 여행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은 바로 여성 여행자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성에 연관된 의무에만 갇히기를 거부했던 여성 여행자들이 존재했다. 뤼시 아제마는 17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멋지고 비극적이며 놀라운 생애를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행(문학)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우에스트 프랑스』와 『텔레라마』의 추천 도서 목록에 올랐으며, 『르 몽드』로부터 여행문학 장르를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여행하는 여성들에게 여행은 꿈이 아니라 적나라할 만큼 현실적인 유일하고도 진실한 삶이다. 자유롭고 고독한 삶, 절대적이고 온전하며 부정할 수 없는 삶이다.
여성에게 여행은 모든 금지와 명령에 불을 지르는 일이다. “나는 그곳에 가고 싶고, 그렇게 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에,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일이다.(266-267쪽)
여성들은 여행할 자유를 원했고 또 여행하기 위해 자유로워지려 했다. 여성 여행자들은 그들에게 강요된 비좁은 테두리를 밀어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옴으로써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미 길을 떠난 여성들, 그리고 아직 과감히 떠나지 못한 여성들에게 전하는 나침반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뤼시 아제마 역시 남성 작가들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며 자랐지만, 이제 그녀가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려는 순간이다.” ―『마리끌레르』
남성 여행자들의 글은 낯선 지역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한편 성차별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사고를 강화했다. 사실 여행은 그 자체로 남성성을 상징한다. 그들은 증명, 배제, 거짓말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여성을 멸시하는 수단으로 여행을 활용했다. 새로운 땅을 처음 ‘발견’하고 ‘정복’하는 것은 남성들의 역할이었다. 여행의 이런 정복적 측면은 식민지 개발과도 닮아 있는데, 환상을 실현하고 착취와 지배의 형태를 학습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여행지와 식민지는 유사하다. 이에 더해 언제나 주체가 되는 남성/정복자 구도와 타자로 그려지는 여성/식민지 구도가 대비를 이루며 여행과 정복은 완전한 근친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여성의 여행은 단순히 무모한 취미를 넘어 페미니즘적 참여로도 이어졌다. 20세기 초 패니 불럭 워크맨은 카라코람산맥을 등반하면서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흔들었다. 이후 애니 펙과 알린 블룸을 비롯한 여성들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 메리 프렌치 셸던은 여성도 남성만큼 훌륭한 탐험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킬리만자로산으로 떠나며 남편이 동행하지 못하게 했다. 1889년, 넬리 블라이는 작은 가방 하나와 단벌 드레스만 가지고 72일 만에 세계를 일주했다. 그 기록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에 대한 부담을 벗어던지고 남성우월주의적 냉소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여성들은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때로는 그저 낯설고 위험한 모험 자체를 즐기기 위해 여행했다. 그러나 여행이 모든 해방의 지름길은 아니었다. 가부장제는 여행 전후로 작용하며 여전히 여성을 억압했다. 올랭프 오두아르는 사막 여행을 마친 후 현실로 돌아왔을 때 여행을 하는 1년 동안 입었던 옷에 쓴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옷 한 벌을 만들어야 했다. 플로라 트리스탕의 남편은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의 가슴에 총을 쐈다. 오늘날 여성들은 과거보다 쉽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길 위에서 여전히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통계적으로 여성에게 더 위험한 장소는 지구 반대편의 낯선 여행지가 아니라 자신의 가정이다.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문밖으로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매혹적인 책에서 저자는 여행과 여성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성찰을 제시한다.”
―『마담 피가로』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와 행동은 통제된다. 이런 통제는 아름다움을 이동의 가치보다 우선시한 전족과 하이힐 문화처럼 세기를 넘어 이어진다. 잔 디욀라푸아는 불편한 치마를 입지 않기 위해 파리 지사에게 ‘남장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전문 기술을 갖춘 기내 승무원이 항공사에서 지정한 신체적 조건과 용모 규정을 따라야 하는 데다 결혼 여부까지 규제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성차별적 사회화로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렇듯 가부장적 규범이 지배한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보다 비판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으로 현실을 보여주고, 남성 여행자들이 전하지 않은 세상의 사각지대를 드러낸다. 마르가 당뒤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렘에 갇혀 지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남성 작가들의 글에서 하렘은 동양적 화려함과 낭만이 담긴 장소로 묘사되곤 했지만 실제 그곳에 갇힌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남성 법의 지배 아래서 성적 대상화되어 주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르네 아몽은 타히티섬에 잠시 머물며 성병을 옮기거나 거짓된 희망을 심어준 남성 여행자들이 떠나고 남은 어린 여성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여성 여행자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여행지의 진짜 모습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여행자는 자신을 ‘제3의 성’으로 만들어 여성의 공간과 남성의 공간에 모두 접근할 수 있는 특수한 지위를 누렸다. 그들은 남성에게는 금지된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났다. 또 남성이 금지한 곳으로 나아가 넓은 세상과 마주했다. 일부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하다가 죽음을 맞았지만, 반대로 많은 여성들이 죽기 직전까지 여행을 계속했다. 알렉상드라 다비드넬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죽음을 위해 죽는 것, 나는 그 일이 대초원 어딘가에 있는 길의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적어도 내가 원하는 일을 시도했다는 마지막 만족감을 느끼며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침실에 누워 용기가 없었다는 후회,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했고 내가 보려 했던 것을 결코 보지 못했고 내가 하려 했던 것을 결코 하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죽어가기보다는.” (174쪽)
두려움은 자유에 필연적으로 따른다. 두려움은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아니라 더욱 활기를 띠게 만드는 생명력의 표시다.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주변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족쇄까지 끊어버린 여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바다에서, 산 정상에서,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들의 눈앞에 이전까지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들이 여행하며 발견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이었다. 때로 진정한 자유는 지구 반대편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여행을 많이 하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다 베이루트로 넘어가 4학년 과정을 이수했다. 학업을 마치고 일을 하면서도 온통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혔다. 열아홉 살에 이집트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레바논과 아랍에미리트, 인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2017년 이란에 정착했다. 프랑스 주간지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에 인도와 테헤란 생활을 담은 기사를 연재했다. 10년 넘게 도착하고 떠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고 그런 자신의 경험과 여행문학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의 여행과 기록에 대한 글을 썼다. 그녀의 첫 책 『세상은 단 한 번도 떠날 때와 똑같지 않았다』(원제: Les femmes aussi sont du voyage)는 이미 길을 떠난 여성들, 그리고 아직 과감하게 떠나지 못한 여성들에게 전하는 나침반으로, 『르 몽드』로부터 여행문학 장르의 비평적 연구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들어가는 말
1부 여행할 자유
1장 남성성 제조 공장
증명하기...배제하기...거짓말하기
2장 여성혐오 사회에서 여행하기
중립적인 남성...영원한 미성년자/소수자...겁 많은 여자 혹은 창녀
3장 열대지방 포르노
페티시즘의 대상이 된 여성들...성애화된 공간들...섹스 관광객
4장 여행을 탈식민지화하기
타인을 만들어내다...역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탐험
2부 여행하기 위한 자유
5장 움직일 자유
수천 년 동안 갇혀 있던 사람들...엄청난 전율...도시를 한가로이 거니는 여자
6장 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홀로 있기, 자유롭기...자유만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자기만의 방’에 닿기
7장 여행하며 경험하는 모성
어머니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모성과 부성: 새로운 대륙들...여행 가방에 아이를 담고
8장 제자리를 (되)찾기
자신의 직관을 따르기...세상을 살아가기...산산조각 나다
참고 문헌
뤼시 아제마 지음, 이정은 옮김 저자가 집필한 등록된 컨텐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