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인생의 모순을 직조하는 작가 전경린의 귀환!
시대를 앞서 출발해 마침내 우리 앞에 도착한 질문
존재의 모순과 균열을 깊이 응시하며 한국문학에 독보적인 목소리를 더해온 작가 전경린.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성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왔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의 진실과 허상, 사랑이라 포장된 집착과 자유 사이의 경계를 언제나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전경린의 문장은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을 깨뜨리며, 애써 외면했던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로 언어의 매력을 일깨운다." 영국 출신의 한국문학 번역가 소피 보우만은 가장 사랑하는 한국작가로 전경린을 꼽으며 이같은 찬사를 건넸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전경린의 소설 속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어 "책장을 찢어" 가지고 다니며 읽었노라 고백한 바 있다. SNS에는 "전경린의 문장만으로 힘겨운 시간을 버텨냈다" “작가 전경린은 몰라도 전경린의 문장은 모르고 지나칠 수 없다”라는 독자들의 열렬한 간증으로 넘친다. 이처럼 그는 시대를 초월하는 언어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독자들의 영혼 깊숙한 곳을 어루만진다.
그런 전경린의 장편소설 『엄마의 집』이 출간 18주년을 맞아 『자기만의 집』이란 새 이름으로 다시 독자를 만난다.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생의 본질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다. 더욱이 가족이란 테두리가 흐릿해지고 사랑의 의미가 불투명해져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 지금, 이 소설은 처음 출간되었던 2007년보다 더욱 답이 절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가장 본질에 가까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을까?"
“진짜 어른이 되면 말이야. 타인에게서 사랑을 바라지 않아.”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상처와 치부를 직면하고서
이윽고 세상을 향해 내딛는 스물한 살의 첫 발걸음
이야기는 뜻밖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화창한 오후, 엄마와 오래전에 이혼한 아빠가 트럭을 몰고 불쑥 호은 앞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중학교 2학년인 이복동생 승지를 엄마 윤선에게 맡겨달라는 알 수 없는 부탁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윤선은 당황하지만, 이내 호은과 승지를 차에 태우고 사라진 아빠를 찾아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과 직장, 오래된 친구들 찾아 추적하지만, 발자국만 남긴 채 멸종한 공룡처럼 아빠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다.
끝내 아빠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윤선의 집으로 되돌아온 호은은 윤선, 승지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고속도로 위에서, 그리고 윤선과 승지 사이에서, 갓 스물을 넘긴 대학생 호은은 부모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기억의 파편 사이를 헤맨다. 자신이 손 쓸 틈도 없이 흔들리는 가족 관계, 오해와 질투로 엇갈렸던 마음과 그래서 어려운 사랑, 막막하고 두려운 미래까지. 호은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정답’을 묻고 또 묻는다.
수많은 질문 끝에 호은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겉보기엔 모두가 비슷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사람들에겐 저마다 끝끝내 건너야 할 “인생의 강”이 있다. 사는 게 이토록 힘든 이유는 미숙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처절하게 배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과 혼란을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서툴게 내딛던 발걸음도 쌓이면 결국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 길이 곧 자기만의 집은 아닐까.
"혼자가 외롭다는 건,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야.
사람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인생의 모든 슬픔과 의문 속에서
제 한 존재를 버틴다는 것에 대하여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삶의 본질이 결국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인생의 굴곡을 받아들이고, 모순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의 선택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상대에 대한 사랑이 때로는 집착이란 오해를 낳아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며, 토끼에게 이름을 붙여 기르는 낯선 이복동생과도 자매가 될 수 있다. 호은은 굴곡진 관계를 하나씩 인정하면서, 자신 역시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삶의 본질은 문제를 사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모순을 보면서도 굴절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목에 걸린 가시같이 모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_《채널예스》 작가 인터뷰 중에서
소설에서 말하는 `자기만의 집`이란 단순히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물리적인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은 자신의 결핍과 상처,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동시에 한 사람이 온전히 깃들 수 있는 안식처이자,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의 터전이다. 자기만의 집을 찾은 호은이 더 이상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며 아파하지 않고, 구할 수 없는 정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지 않듯이.
"생은 내게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_278쪽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호은은 다짐한다. 그것은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니라, 쓰디쓴 현실조차 외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빛나는 생의 기록, 『자기만의 집』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고. 인생이라는 미완의 설계도면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서툰 건축가일 뿐이다. 전경린만의 예리한 문장들로 빛나는 이 소설은 삶이 낯설고 서툰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각자의 방식대로 집을 지어가도 좋다는 은은한 허락이 되어줄 것이다.
사랑과 상실, 욕망과 모순으로 뒤엉킨 복잡한 인간 내면과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 1995년 중편소설 「사막의 달」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줄곧 삶의 균열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모색하는 여성의 생애를 그려왔다. 작품 곳곳에 묻어나는 섬세한 문장과 깊이 있는 통찰은 인생의 뼈아픈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밝히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일보문학상(1997), 문학동네소설상(1997), 21세기문학상(1998), 대한민국소설문학상 대상(2004), 이상문학상 대상(2007), 현대문학상(2011), 현진건문학상(2016)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유리로 만든 배』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풀밭위의 식사』 『최소한의 사랑』 『해변빌라』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이중 연인』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천사는 여기 머문다』 『굿바이 R』
[산문집]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나비』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방문객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물속 반딧불이 정원
생일 파티의 구성원들
니니와 윙윙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
일요일의 통증
유전
순간들의 심연
내 존재의 강물
에필로그 레몬
초판 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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