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영 1 (그녀에게 돌아오는 길)
[책소개]
그녀는 늘 제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철이 지나 질려버린 도포자락 같은, 걸어 놓고 언제든 생각나면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어려서 시집와 함께 자란 누이 같은 사람. 한준은 그런 서진의 삶에 명진이 들어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지금 그녀에게 돌아가려 한다.
[본문 내용 中]
“나가.”
“왜 그래? 어릴 적부터 내가 너 목욕하면 닦아주고 옷 입혔던 사람이야. 부부끼리 내외하냐?”
한준은 굳어버린 서진의 표정을 보면서 헛웃음을 짓는다.
“나가라고 했어.”
“싫다면?”
“...........”
그녀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왜? 너도 싫다는 소리 들으니까 기분이 꽤 묘하지? 내가 그 자식 만나지 말라고 할 때는 보기 좋게 싫다고 하더니, 꼴좋다.”
그녀의 얼굴에서 다시 그 서글픔이 지나간다.
“제발 나가줘..”
“내 앞에서 뭘 그리 빼냐? 우리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잖아.”
맘은 아닌데 입에서 자꾸 말이 엇나간다.
“나 지금...예전에 네가 목욕하고 닦아주던 그 아이가 아니라고..”
자존심이 상한 목소리다.
“그럼 더 잘됐네. 그때보다 볼 건 좀 있겠다.”
“한준아, 제발. 나가서 기다려..”
한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팔을 걷어붙이고는 두 손을 물에 담그고 그녀의 양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새웠다. 너무 놀란 서진이 몸부림치지만 힘없이 딸려 올라오고 만다.
“무슨 짓이야!”
칠흑같이 탐스러운 머릿결이 그녀의 어깨와 가슴을 가려주면 얼마나 좋으랴. 그 아름다운 머리칼은 지금 그녀의 가녀린 등만을 덮어주고 있었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한준도 조금 움찔했지만 이내 냉정한 눈빛을 되찾는다. 그리고는 면포를 펼쳐 그녀를 닦으려고 다가갔다.
/촤악"!!/
순간 날아온 그녀의 손바닥이 그대로 한준의 한쪽 뺨을 후리고 말았다. 고개가 반쯤 돌아갔지만 아픈 것도 모르고 머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데 왜 한준의 가슴이 찢어지는 모를 일이다. 실수했다 싶지만 아직 후회는 없다.
“그래..실컷 봐라. 그새 계집들 못 봤다고 집에서도 성화냐? 오늘은 실컷 보고.. 내일 부턴 나가서 너 좋다는 계집들 보란 말야!”
소리치는 그녀의 얼굴이 벌써 눈물 투성이다. 사내 앞에서 난생 처음 맨몸으로 서있다. 아니, 난생 처음은 아니다. 어린 시절 한준 앞에선 늘 이렇게 목욕을 하고 나왔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이방인처럼 차갑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서진은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다 봤으면..나가.”
“이 서진..”
그녀가 욕조 통 밖으로 걸어 나와 면포로 머리를 닦는다. 그리고는 눈물을 닦고 그 면포에 그냥 얼굴을 박고서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이제 한준의 표정에는 후회가 절절하다. 다른 면포를 펴서 맨몸으로 서있는 그녀의 어깨 위를 덮어 주는데 서진이 소스라치게 그의 손을 쳐낸다.
“만지지 마!”
“................”
그녀의 외침에 한준의 얼굴에서 후회와 분노가 같이 뒤섞인다. 속에서 그 뜨거운 것이 다시 올라왔다.
“내가 지금 그 놈이었다면 네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겠지..”
말없이 뒤돌아 광을 나왔다. 문을 닫고 기대어 섰는데 등 뒤에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그의 귀를 괴롭힌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가슴 속에서 그녀만 생각하면 쉴 새 없이 끌어 올라오던 그 뜨거운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투기였다.
그녀는 어디까지 가있는 것일까?
내가 돌아갈 길은 얼마나 멀어진 것인지.
후회는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는 서진을 향한 그리움으로 바뀐다.
그녀를 향한 집착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는 자신의 심장을 느끼면서 한준은 그 동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떠올린다. 까맣게 지워진 과거 속에 그녀를 혼자 두고 나온 듯 마음이 휭하니 비어버렸다.
第 一 章
끝없는 집착, 그리고 국화향
第 二 章
피로 물든 기억, 그리고 아름다운 복수
第 三 章
삐뚤어진 욕망, 그리고 가슴 시린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