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코르네유는 생전에 비극, 희극뿐만 아니라 비희극, 영웅희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33편을 발표했다. 작품에 고전주의적 특성을 확립해 ‘고전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비극 <시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르 시드>와 함께 첫 서열에 드는 작품이다. 당대인으로부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고, 문인과 대중이 똑같이 이 작품에 매료되어 있으며, 세네카의 작품들만큼 아름답다”는 찬사를 들었다.
에밀리는 황제 오귀스트의 수양딸이다. 하지만 그녀는 황제를 부친의 원수로 여긴다. 연인이자 황제의 충실한 신하 시나와 막심이 그녀를 위해 암살자로 나선다. 하지만 황제 암살 공모가 사전에 발각된다. 황제는 충격을 받는다. 친딸보다 아꼈던 수양딸, 총애하던 신하들의 배신 앞에서 황제의 고민이 깊어진다.
코르네유는 역사적 인물들을 무대에 불러들여 고전주의 양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개연성 있는 극 전개를 위해 고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중은 작품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코르네유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며 극작가로서 입지를 굳건히 했다.
프랑스 비극의 창설자. 라신, 몰리에르와 함께 17세기 프랑스 3대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루앙의 법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콜레주 드 부르봉에서 엄격한 예수회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 스토아학파 라틴어 수업과 연극 실습 과목에 심취했다. 18세에 변호사가 되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아버지가 마련해준 왕실 법률가 일에 종사하며 사교계를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1629년 발표한 희극 『멜리트』가 큰 성공을 거두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1674년 비극 『쉬레나』로 끝을 맺을 때까지 코르네유는 45년간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쳐 총 33편의 극작품을 썼다. 희극, 비극, 비희극, 영웅 희극 등 여러 작품에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의 재능이 한껏 빛난 것은 『르시드』(1637), 『오라스』(1640) 등 비극 작품들에서다. 코르네유에게 인간의 위엄이란 갈등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무를 완수할 힘과 의지와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에게는 여러 미덕이 있지만 코르네유 작품 속 영웅들에게는 의지만이 최고의 덕목이다. 그래서 그의 비극들을 ‘의지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코르네유는 1647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페르타리트』(1652)가 엄청난 실패를 거둔 후 파리 활동을 접고, 한동안 고향 루앙에 돌아가 은둔 생활을 했다. 이후 다시 파리 연극계에 복귀하여 여러 작품을 썼지만, 그때는 이미 라신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그는 1674년 마지막 작품 공연을 끝으로 은퇴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1684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검토(1660∼1682)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코르네유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