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서문 중에서>
일전에 만난 페미니스트 제자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페미니스트적'일 뿐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짐짓 놀라지 않은 척(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유를 되물었더니 '페미니스트라면 젠더 문제, 즉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자신의 정치적 의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절박하게 생각해야 하죠. 그런데 선생님은 과연 그래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반격에 나섰다. 내가 여성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 수많은 글과 행동을 보지 않았나?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비판이야말로 남성 페미니스트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마초들이 흔히 하는 얘기 아닌가? 생물학적인 남성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냐고 말이야. 그런 질문이야말로 여성주의에 대한 남성의 연대를 방해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태클에 불과하지.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집에 오다가 갑자기 '혼란' 상태에 빠졌다. 내가 과연 여성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만약 여자라면?
길거리에서 접촉 사고가 났을 때 정말 당혹스러울 것 같아. 위협적으로 덤비는 상대방 남자에 대항해서 내 정당성을 맘껏 주장하지 못할 게다. 그는 날 때릴 수도 아니 최소한 밀칠 수도 있으니까. 옆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나 없나부터 보겠지. '씨X년' 같은 욕설을 들을까 봐 두려워하겠지. 강단에서 교수님이면 뭐해, 그저 길거리에서는 남자들의 거친 일상적 폭력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는 똑같은 '여자'인데. 만약 그런 욕설을 듣게 되면 일단 입이 턱 막혀 숨도 못 쉬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너무도 분해서 운전대를 잡고 괴성을 지를지도 몰라. 그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하지? 경찰서에 신고하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엠히스트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식량 및 발전정책 연구소’ 연구원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1994년부터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환경평화 정치론, 성과 문화의 정치학, 사이버 정치학 등 ‘비주류’ 정치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에콜로지, 탈분단, 문화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고 있으며, 저서로「국민으로부터의 탈퇴」「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우리안의 파시즘(공저)」등이 있다.
서문: 내가 만약 여자라면
I. 나, 남자 페미니스트
남성 페미니스트를 위한 변명
서른한 살 여성에게 쓰는 편지
한국 남자 나,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나
II. 가부장적 감수성과 대중문화
공적인 남성, 사적인 여성
이갈리아의 아들들
섹스, 비디오, 인권
안티 미스 코리아
이창동 감독께
「아줌마」와 지식인 여성
의리는 '싸나이'만의 특권?
내가 음성 다중을 좋아하는 이유
푸른 안개, 붉은 안개
성차별 듀엣
낭만적 사랑과 폭력
III. 사랑할 권리, 사랑하지 않을 권리
영원한 사랑은 없다?
침실의 사랑, 병원 침대 위의 파트너
마법의 '성'
사랑하지 않을 권리, 결혼하지 않을 권리
이혼을 은폐하는 사회
주례사의 조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방법
꼭 때려야 하는가?
내가 극기 훈련을 싫어하는 까닭
IV. 대한 남성 공화국
아이엠에프 시대의 '여성 죽이기'
'보통 여성을 위한 여성부'?
대한남국의 연세여대
대변인 박선숙 씨가 가볍다?
의원과 기자들에게 묻는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는 중요한 이유!
오~남성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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