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한일 지성이 벌이는 우정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임지현 교수와 일본의 사카이 나오키 교수가 ‘경계짓기로서의 근대를 넘어서’라는 테마로 나눈 대담을 책으로 묶었다. 이 대담에서 두 사람은 ‘민족’과 ‘국가’라는 근대의 견고한 장벽을 뛰어넘으면서 ‘식민지-제국’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떨쳐낸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의식과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두 대담자는 우선 민족 인종 국가 성 계급 등 근대의 다섯 가지의 장벽을 허문다. 서구에서 시작된 이러한 장벽이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이론적 추상의 과정을 주고 받으면서 토론하고 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경계짓기에 저항했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포섭’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근대적 해방의 한계 역시 지적한다.
사상사를 전공한 나오키 교수의 날카로운 성찰과 역사학을 전공한 임지현 교수의 사실적 예증이 잘 어울리는 대담이다. 민족적 이념으로 무장한 근대국가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두 대담자는 경계 밖의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차별과 배제는 제국주의를 통해 전파되었고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의 논리는 제국의 '오만'을 모방한 '편견'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양대 사학과 교수. 〈당대비평〉 편집위원.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사상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영국 포츠머스 대학의 민족주의 연구회 등에서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현재 영국 글래모건 대학교의 외래교수 겸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의 초청학자로 외유 중이다.
임지현은 근대유럽지성사, 사회주의 사상사, 폴란드 근현대사, 동유럽 민족운동사, 유럽 노동운동사 등의 연구를 통해 유럽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민족’이라는 뜨거운 이슈를 제기해왔다. 특정 인종이나 땅, 언어 등으로 묶는 식의 민족주의를 초월해 공통의 관심사와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민족 개념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전개해왔고, 현재도 ‘민족주의 비교연구’ ‘파시즘 비교연구’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아 ‘근대성’을 넘어서는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최근 그가 펴낸 일련의 저서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이었고, 이번 대담은 그 기획의 가능성을 열어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서로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1990),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1998), 《민족주의는 반역이다》(1999),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2000), 《이념의 속살》(2001) 등이 있으며, 《서양의 지적 운동》(1994), 《우리 안의 파시즘》(2000) 등을 편저했다.
■ 서문
식민주의적 죄의식을 넘어서-사카이 나오키
세습적 희생자의식을 넘어서-임지현
1장 식민지, 제국의 콤플렉스를 벗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동아시아 역사에 투영된 '제국'의 흔적
2장 민족, 국가-폭력과 배제 그리고 포섭의 담론들
민족은 역사적ㆍ문화적 구축물이다
20세기의 신화, 민족주의
한국과 일본의 염치 없는 내셔널리즘
3장 문명, 근대-내면화된 서양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한국은 동양, 일본은 서양이라는 배치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들
4장 젠더, 인종-차별과 편견을 잉태한 제국의 오만
보편적 존재로서 남성, 타자화되는 여성
식민지-제국에서의 남성과 여성
5장 오만과 편견-그 대항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세상의 관계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
전지구적 연대,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출발점
■ 사카이 나오키ㆍ임지현 공동 후기
■ 기획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