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예술과학대학교 전자책도서관

책소개

나의 그림자가 나를 노리고 있다. 그림자는 언제나 나를 면밀히 주시하고 나를 흉내내며 내 뒤를 따라다닌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에서도 그림자는 엷어져서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그림자는 그 어둠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달이나 촛불이나 가로등이 빛나고 있는 곳, 내 몸이 한쪽만 빛에 노출되는 곳에 이르면 어김없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내고서 나와 마주선다. 그러나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그것은 나와 무관하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든 자기 그림자에게 아무 책임감이 없듯이, 나 또한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 말대로라면 한두조는 주변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 분신으로 몰아서 죽여버린 셈이군. 이거 웬지 기분이 섬?해지는데. 자네들은 그 자의 말이 어처구니없게 들릴 뿐인지는 몰라도, 나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네. 그런 자를 풀어놓으면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자기 분신이라고 하면서 칼을 들고 덤벼들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자꾸 으스스한 생각이 들어.”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1958년 춘천 출생.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맹점』 당선.
창작집 『공중누각』, 『화두, 기록, 화석』, 장편소설 『고래뱃속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4부작, 장편소설 『벽화 그리는 남자』, 창작집 『내 정신의 그믐』, 장편소설 『불멸과 소멸』, 창작집 『분신들』, 장편소설 『매미』, 짧은 소설 모음집 『모든 신 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다』 출간.
윤동주문학상(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1993년).
현재 한신대학교 한국문화학부(문예창작학 전공)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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