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돌담\n\n\n막막한 세상의 끝\n천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고\n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n나는 홀로\n돌담을 마주하고 선다\n조용히 돌거울을 들여다보면\n거기 내가 길이 되어 누워있다\n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한 줄기\n길이 되어 외롭게 누워있다.\n- 『외눈이 마을 그 짐승』\n\n\n\n\n고요한 눈발 속에\n\n\n어느 날 문득\n참으로 가진 것도 아는 것도\n아무것도 없다고 소슬히 느낄 때\n오늘도 내일도 참으로 바랄 것이\n아무것도 없다고 조용히 되새길 때\n\n천지에 자욱이 내리는\n고요한 눈발 속\n홀로 서 있는 나를 본다\n풀꽃도 돌멩이도\n눈을 맞고 있다.\n- 『외눈이 마을 그 짐승』\n\n\n\n\n도굴꾼\n\n\n도굴꾼이 파헤친 무덤이\n풀숲에 그냥 버려져 있다\n여기저기 풀매미가 울고\n웅덩이는 두어 마리 물거미가 살고 있다\n한 사람의 일평생의 꿈이\n흙빛으로 변색되어 있던 곳\n도굴꾼은 무덤을 파고 들어가면서도\n자신이 꿈속을 삽질하면서\n제 꿈을 좇고 있음을\n정녕 까맣게 몰랐으리라\n\n사람들은 모두 그런 줄 모르면서\n제 꿈속에서 삽질을 한다\n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도굴되어도\n도굴꾼을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은\n바로 그 때문이다\n여기저기서 풀매미가 울고\n물거미가 가볍게 떠다닐 뿐이다.\n- 『바람의 애벌레』(시학, 2011)

저자소개

국문학자, 시인. 배재대학교 인문대 명예교수. 시집에 『썩지 않는 슬픔』, 『나는 거기에 없었다』등 다수. 저서에 『도의 시학』, 『도와 생태적 상상력』 등 다수. 옮긴 책에 『삼국유사』,『구운몽』 등이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