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썩지 않는 슬픔\n\n\n멍들거나\n피 흘리는 아픔은\n이내 삭은 거름이 되어\n단단한 삶의 옹이를 만들지만\n슬픔은 결코 썩지 않는다\n옛 고향집 뒤란\n살구나무 밑에\n썩지 않고 묻혀 있던\n돌아가신 어머니의 흰 고무신처럼\n그것은\n어두운 마음 어느 구석에\n초승달로 걸려\n오래오래 흐린 빛을 뿌린다.\n- 『썩지 않는 슬픔』\n\n\n\n숯\n\n\n숯을 아시나요\n마파람 하늬바람 모두 잠들고\n어두운 길로 다니던 뭇 짐승들\n아득한 벼랑으로 떨어져 버린\n고요 속의 검은 뼈를 아시나요\n\n벼락의 고요 속 등잔불도 꺼지고\n춘하추동 층층이 쌓이어 묻힌\n사투리의 무덤을 아시나요\n\n남루한 옷들은\n타오르는 불길에 벗어버리고\n살 속의 불길에 주어버리고\n썩지 않는 뼈로 남아\n길을 껴안는 숯을 아시나요\n\n깊고 먼 자정\n당신의 벌판에도 눈이 내리면\n맑은 이마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는\n불과 이별한 빛으로 타오르는\n당신 영혼의 숯을 아시나요.\n- 『썩지 않는 슬픔』\n\n\n\n감옥\n\n\n가슴 깊이\n별을 지닌 사람들은\n모두 감옥에 갇힌다\n별 향한 창틀 하나 달린\n감옥 속에\n\n한번\n푸른 하늘을 본 사람들은\n모두 감옥에 갇힌다\n하늘 향한 창틀 하나 달린\n감옥 속에\n\n타는 그리움으로\n노래를 불러본 사람들은\n모두 감옥에 갇힌다\n귀를 향한 통로 하나 달린\n감옥 속에\n\n순한 짐승들은 숲 속을 서성이고\n꿈꾸는 사람들은\n한평생 감옥 속을 종종이고\n\n사람들은 누구나\n제 키만 한 감옥 속에\n조만간 갇히게 된다\n갇혀서 마침내 작은 감옥이 된다.\n- 『썩지 않는 슬픔』

저자소개

국문학자, 시인. 배재대학교 인문대 명예교수. 시집에 『썩지 않는 슬픔』, 『나는 거기에 없었다』등 다수. 저서에 『도의 시학』, 『도와 생태적 상상력』 등 다수. 옮긴 책에 『삼국유사』,『구운몽』 등이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