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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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저자
한귀은 저
출판사
웨일북
출판일
2018-05-15
등록일
2018-10-1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6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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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 속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다행이다’ 싶은 게 행복이다. 덜 추워서 다행이다, 덜 더워서 다행이다, 덜 피곤해서 다행이다, 덜 아파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놓고 그것을 피하면 행복하다고 해석하는 거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 몸의 통증도, 마음의 통증도 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잘 해석해야 할 대상이다. 통증을 해석하고 나니 통증에 대한 두려움도 좀 사라진다. 통증에 대해 알게 된 셈이다. 무릇 아는 것만큼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_p31 ‘다들 그렇게 산다’ 중에서

청춘과 성욕이 사라진 자리에 유머가 생겼으면 좋겠다. 유머는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다. 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오고, 죽음에 더 가까워지면 두렵고 상처 또한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유머로 잘 극복하면 좋겠다. 비록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세상에 대해서 어떤 현명한 발언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 개인으로서의 윤리를 견지하고 소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성욕이 사라진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괜한 흥분과 조바심을 조금은 남겼으면 좋겠다. 멋있는 노년의 남자를 보고 약간은 설레었으면 좋겠고, 그 때문에 주책없는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또 한 번 유연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_p50 ‘청춘이 진짜 사라지는 순간’ 중에서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이 낯설어진다. 우리 집 거울 속의 ‘나’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다른 곳에서 무심코 본 거울 속의 여자는 너무 이상하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스캔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그나마 아직 덜 늙은 증거다). 저 모습으로 집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머리카락, 윤기가 없다. 몸, 긴장감이 없다. 얼굴, 어둡고 칙칙하다. 자신감, 없어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문제는 그 놀람도 잠깐이라는 것이다. 놀람이 유지되었다면 미용에 좀 관심을 가졌겠지. 그러나 아줌마는 금방 잊는다.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금방 다시 ‘주부’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다.
_p56 ‘갱년기’ 중에서

이 나이쯤 되면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순간 반짝이는 빛을 발견할 줄 알게 된다. 그 빛이 사라지더라도 또 다른 빛이 오리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삶이란 그 빛을 기다리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삶’도 중요하지만 ‘생명’ 그 자체가 더 눈부시다는 것도 알게 된다.
_p68 ‘산다는 건 빛을 기다리는 과정’ 중에서

어렸을 때 어른들이 “너 많이 컸구나” 하면 그게 굉장한 칭찬으로 느껴졌었다. 다만 시간이 지난 것뿐인데……. 지금은 어떤 얘기가 칭찬으로 여겨지는가. “너 아직도 노안이 안 왔구나”나 “너 아직 머리숱이 많구나”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흐른 것 때문에 칭찬받고, 나이 들어서는 시간을 비껴간 것 때문에 칭찬 비슷한 것을 듣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듬성듬성해진 머리, 오르기 시작한 뱃살, 거칠어져가는 피부, 그런 것들과 함께 사랑을 해야 한다. 환상이 작동하기 참 힘든 조건이다.
_p79 ‘환상과 환멸은 멀지 않다’ 중에서

인생의 쇄신과 갱신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일어나게 돼 있다. 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 정말 어찌할 수 없어서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마음만 동동거릴 경우,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 어쩌지 못하는 일에 마음만 분주하고 그 일에 질질 끌려 다닌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고, ‘나’를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는 아예 박탈당한다. 애초에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으니 물질적인 것 따위는 좀 잃어도 괜찮다. ‘나’에 대한 앎과 믿음이 인생의 또 다른 일에 대한 현명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_p86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중에서

주사를 맞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정이입은 된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나이 들어서 나이 들어 보이는 건 괜찮은데 우울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좀 속상하다. 우울해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을 진하게 하면 사나워 보인다. 역시 딜레마다. 딜레마를 가까스로 피하는 방법은 그냥 ‘나’로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나를 그냥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자신에게 내재된 미(美)라고 할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하여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
-p238 ‘얼굴, 주사로 가능할까’ 중에서

아마 노년에 누군가에게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너의 냄새까지도 사랑해’라는 뜻도 들어 있을 것이다. 말로는 그럴 것이다. “당신 피곤한가 봐. 안 나던 냄새가 나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왜 ‘서로’라는 말을 썼는가 하면, 그 냄새가 나에게도 날 것이기 때문이다. 늙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p251 ‘노년의 사랑’ 중에서

치매가 있으면 치매가 있는 대로 치매 있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뇌는 고령에도 지속적으로 가소성을 유지한단다. 가소성이란, 말 그대로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의미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가 오더라도 뇌를 계속해서 쓰면 병변이 없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 되어서 그 병의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사랑은 뇌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랑은 뇌의 가소성을 증강시킬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신은 고약하게 늙어가는 인간을 위해 ‘사랑’을 선물하신 거다.
-p252쪽 ‘노년의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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